마카오에서 도박한 썰 3편
카드가 뒤집혔다.
결과는, 오른쪽이 왼쪽보다 패가 더 높았다.
나의 승리였다.
이 기분은 경험해보면 안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패배했는데, 다른 곳에 내기를 건 나만이 유일하게 승리한 이 기분.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결코 기분 좋은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
왜냐면 난 고작 3만원 걸었지만 옆에선 50만원, 150만원 이렇게 걸고 있다고.
눈앞에서 100만원이 날아갔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겠어.
도박판에도 예의가 있어서, 다들 웃으면서, 기분 좋게 게임을 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마카오에서 쌍놈들 취급 받는 이유가 이런 매너가 없어서다.
따면 옆사람 배려하지 않고 낄낄대고, 잃으면 괜히 성질 부리고.
하긴 한국에서 마카오까지 왔는데 돈 잃으면 기분 좋겠느냐마는...
뭔 상관이야.
난 이겼다. 그것도 생애 처음으로 한 도박에서.
딜러가 150만원, 100만원, 20만원을 테이블에서 싸-악 거두고.
나한테만 3만원의 2배인 6만원을 준다.
그렇다.
2배다.
바카라에서 이기면 2배를 주는 거다.
짜릿했다.
100만원이 한 순간에 200만원이 되고.
1000만원을 걸면 2000만원이 된다.
전에 VIP룸에서 30억 놓고 배팅하던 중국 놈은, 단 한 순간에 1억을 벌고 1억을 잃고 그랬던 거지.
이러는데 평범한 직장일이 마음에 차겠어, 다 도박에서 한판승부 거는 거지...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판갤러들처럼 책 많이 읽은 사람들은 쉽게 알겠지만, 인생이 가끔 플롯처럼 흐를 때가 있더라고^^ ㅅㅂ
내가 계속 지게 된 거지.
아니, 정말로 계속 졌어.
이유는 단순해.
나는 사람들이 "그림을 잘 본다"라는 걸 믿지 않았어.
당연하잖아. 그건 미신인걸.
확률은 1:1이야. 조금 차이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 1:1이랑 마찬가지야.
근데 그림을 본다고? 왼편이 나올지 오른편이 나올지 안다고? 이거 미친 놈들 아냐.
그래서 사람들이 우르르 왼쪽으로 쏠리면 나 혼자서 오른쪽,
사람들이 우르르 오른쪽으로 쏠리면 나 혼자서 왼쪽. 독고다이로 플레이한 거지.
괜히 나 혼자서 튀겠다고 딴 곳에 갔는데, 그래서 지니까 더 쪽팔리더라.
그 쪽팔린 걸 무마하려고, '거 봐, 내가 잘 갔잖아' 하고 말하고 싶어서 계속 독고다이 하고...
그랬더니 30만원... 20만원... 10만원... 3만원...
제로. 오링 났어.
1시간도 안 돼서.
패배한 게 그렇게 분하지는 않았어.
내가 분했던 거는, 어떻게 한 번도 안 맞을 수 있냐는 거지. 첫판을 빼고.
누가 도박사의 오류라고 그러던데, 그럼 "그림이 잘 보인다"라는 믿음은 오류가 아니야?
ㅅㅂ 도박은 그냥 오류야. 오류라고.
내가 분한 건, 너도 틀리고 나도 틀렸는데, 왜 너는 따고 나는 잃었냐는 거지.
좋아.
내 수중에는 아직 70만원이 남아 있어.
이 70만원은 잃어도 되는 자금이야. 여행비나 나머지 기타 등등 전부 제외한 거니까.
난 테이블에서 뻘쭘하게 일어섰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국인이 재빠르게 자리에 앉더라.
※ 배팅액이 부족해서 자리에 못 앉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다른 사람이 배팅한 곳에 자기 돈을 '얹혀서' 걸어.
이렇게 뒷사람이 얹히는 걸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돈을 따면 앉아 있는 사람이 따로 뒷사람 몫을 떼어주지.
얹혀서 걸기 전에는 앉은 사람한테 "OK?"라고 물어본 다음에 걸고(중국인들 영어 못하니까 OK라고만 하시오),
걸 때도 이게 내 몫이라는 걸 표시하기 위해, 즉 나중에 몫 나눠줄 때 헷갈리지 않게, 앉은 사람의 배팅칩 옆에 놔둘 것.
난 재빨리 ATM 기계로 다가갔어.
정말 멋진 게 카지노는 곳곳에 ATM 기계들을 상비해뒀습니다^_^
너님들 돈 떨어지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통장에서 털어내라는, 카지노 측의 눈물겨운 배려예요^_^
70만원 중에서 30만원을 꺼냈어. 70만원 전부 꺼낼까 싶기도 했는데, 왠지 그럼 안 될 거 같더라.
비밀번호를 누르고 30만원이 나오는 걸 기다리는데...이게 왠걸.
돈이 안 나오잖아.
아니, 애당초 돈이 나오는 출구가 안 보이는 거야.
하도 황당해서 카지노에 돌아다니는 직원을 찾았어. ATM에서 돈이 안 나온다고.
직원이 "??" 갸우뚱하면서 날 따라왔지. 그래서 내가 ATM 기계를 가리키며, 유창한 영어 솜씨로 돈이 안 나온다고 물었지.
그때 직원이 말했어.
"돈은 여기서 나오는 건데요."
직원이 가리킨 곳은 ATM 기계의 하단.
마카오의 ATM은 우리나라처럼 위쪽에 지폐 출구가 달린 게 아니라, 기계 아래에 출구가 달린 거야.
난 마카오에서 돈 처음 뽑아봤으니까 전혀 몰랐지.
잠깐, 그런데 나 아까 30만원 뽑았잖아?
근데 그 30만원은 어디 간 거야?????
직원이 곤란하다는 듯 눈길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어.
"누가 가져간 것 아닐까요? 아마도(may be)."
난 그렇게 눈 뜬 장님처럼 30만원을 잃어버렸다.
-4편에 계속.